1
내 휴대폰 사진첩에는 이런 사진들만 있다: 친구와 토요일 자정에 이태원을 산책하며 본 길거리에 떨어진 유희왕 카드, 조판이 이상하거나 훌륭한 인쇄물, 나와 관련된 숫자, 특별하게 맛있었던 음식이나 간식, 번역 앱을 거쳐 이상하게 번역된 글, 유리창에 은은하게 비친 내 모습, 비 오는 풍경, 노을, 유난히 동그란 달, 카페의 공용 와이파이 비밀번호, 우연히 똑같은 색상의 신발을 신은 친구들, 날씨 좋은 날 산책하며 먹은 맥도날드의 초코 선데이,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 요리, 마음에 드는 착장,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

2애플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를 제공한다. 몇 달 전 나는 내가 가진 아이폰 13 미니를 수리 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든 사진과 영상을 백업했고, 그 후로는 자동 동기화 기능을 켜 두었다. 이제 나는 휴대폰을 잃어버려도 사진만은 되찾을 수 있게 됐다.

3사진 프레임 바깥에 3mm 간격의 재단선을 만들어 넣는다. 2mm는 너무 좁고 4mm는 디자이너들이 기피하는 짝수라는 이유에서인데, 그게 곧 효율이다. 간격이 이보다 좁으면 종이를 자르거나 직조 하는 과정에서 종이가 끊어지거나 구겨질 위험이 있어 안 된다. 3mm 간격의 재단선을 기준 삼아 어떤 것은 6mm로 자르고 또 어떤 것은 30mm로 자른다. ……종이의 너비가 기억의 선명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과물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모두 1:1로 똑같다. 간격은 내가 엮는 두 시간을 얼마나 겹쳐 기억하고 있느냐의 차이로 결정된다.

4지금 내 왼쪽에는 무인양품에서 산 필통과 에어팟 케이스, 휴지가 있고 중간에는 맥북, 오른쪽에는 커피와 노트, 볼펜, 담배, 휴대폰이 있다.

5복사지를 선택한 이유는 내 직업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거의 매일 만지는 종류의 종이인 만큼 다루기 쉽고 접근성도 좋다. 무엇보다 종이의 결이나 색의 개입이 적어야 했기 때문에 표면이 밋밋하고 새하얀 복사지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컬러 디지털 출력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프린트 카페나 피씨방에만 가도 저렴한 가격에 선명하게 출력할 수 있으니까. 때로는 특정 색이 튀거나 잉크가 번져 군데군데 묻어나긴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사진과 완벽하게 똑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괜찮다. 물론 스캔한 결과물을 다른 지면에 출력 할 때는 오프셋 인쇄나 (거의 비슷한 퀄리티를 보장하는) 인디고 인쇄를 선택한다.

6과거, 현재, 미래는 시간을 구분하는 분류법이다. 지나간 일들과 일어날 일들은 찰나같은 ‘현재’처럼, ‘과거'나 ‘미래와’ 같은 짧은 단어 속으로 축약된다. 어제 갔던 맥도날드에서는 2010년대에 유행했던 케이팝을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었다. 내가 먹은 초코 선데이는 작년보다 가격이 400원 오른 2,100원이었다.
7종종 시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선으로 묘사된다. 마치 글을 읽고 쓰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왼쪽은 과거고 중간은 현재, 오른쪽은 미래인 건 좀 이상하다.








workbygu.com | workbygu@gmail.com | @kimgukhan
ⓒ Gukhan Kim, 2023.